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일혁명당 사건 (문단 편집) == 시대적 배경 == [[4.19 혁명]]과 [[5.16 군사정변]]의 파도가 지나간 뒤 1962년에 [[쿠바 미사일 위기]]가 일어나고 [[미국]]이 [[베트남 전쟁]]에 개입하는 등 국제 정세가 급격히 변동하기 시작했다. 세계 전쟁이나 미국의 공격에 대한 위기감이 쌓인 [[북한]] 정부는 우선 자체적인 힘을 기르는 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국방이었다. 1962년 12월에 개최된 [[조선로동당]] 중앙회의 전원회의에서 "전군의 간부화, 전군의 현대화, 전 인민의 무장화, 전국의 요새화"를 주 내용으로 한 4대 군사노선을 발표했다.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남한에서의 혁명을 기대했지만 그건 북한이 일방적으로 지원해서 되는 게 아니며 남측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일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. 또 국제적인 [[반미]] 혁명세력과 단결하여 범세계적인 반제/반미 전선을 결성하고자 했다. 1964년에 열린 전원회의에서도 이와 같은 방안을 '3대 혁명역량 강화방침'으로 정리했다. 이 방침은 북한의 혁명기지 강화, 남한의 혁명역량 강화, 국제 혁명역량과의 강화를 내세웠으며 이는 북쪽의 '민주기지'를 강화한 뒤 주로 무력에 의지해서 [[적화통일|남북통일]]을 달성하고자 한 한국전쟁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. 따라서 남쪽은 그 자체의 힘에 따라 '남조선혁명'을 이룩해야 함이 강조된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